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거룩한 변모>

2013년8월6일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복음묵상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루카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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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이다. 이는 교회의 전승에 따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40일을 앞두고 당신의 부활하신 모습을 상징적으로 미리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이라는 믿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오늘은 우리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요즘 개인적으로, 이해를 하면서도 거부반응을 보이는 일이 있다.
TV를 통해서 보게 되는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지인들 사이에서도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외모에 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물론 아름답게 젊음을 유지하고픈 마음은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남녀 가리지 않고, 안면 근육의 움직임이 어색할 정도로 이물질을 집어넣으면서까지 젊음을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면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심지어는 이러한 세상의 흐름 때문인지, 광고의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젊음 자체로 한없이 예쁘게만 보이는 이 십대 친구들마저 똑 같은 모습을 좇고 있다는 것은 뭐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다.
지상외모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은 일반적이나, 그러면서도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모든 분야에 있어서 불리한 대우를 받는다는 이야기도 일반적이다.
이 모두가 이 시대의 가슴 아픈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나의 고리타분한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 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만큼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교회가 오랜 세월 동안, 사용하는 라틴어 표현이 있다.
‘’IMAGO DEI’(이마고 데이, ‘The Image of God’)가 그것이다.
‘하느님의 모상(模像)’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모상이란 모습이 닮았다는 이야기다.
즉,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어떤 모습을 닮았다고 하는 것일까?

매일 우리는 거울 앞에 선다.
그 안에서 자신의 무엇을 보고 있는가?
젊음이나 늙음인가? 아니면 아름다움이나 추함인가?

늙음도 은총이라는 말을 언젠가 한 적이 있다.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주름진 얼굴의 승려나 수도자의 눈에서 맑은 아름다움을 본다.
가진 것 없지만,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누는 따뜻한 웃음 소리에서 아름다움을 본다.
한평생 허리가 굽어지도록 시장통 모퉁이에 앉아 두부를 팔아 모은 전 재산을 불우한 학생들을 위해 내놓는 할머니의 수줍은 눈빛에서 참된 지혜의 아름다움을 본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주위를 둘러보면 참된 아름다움을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에 감사한다.

아무리 우리가 발버둥을 친다고 해도 우리의 육체는 시간과 함께 늙어간다.
순리를 받아들이려는 마음에 아름다움은 주어진다.
자연스러움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마음에 아름다움은 주어진다.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별하려는 마음에 아름다움은 주어진다.

욕망이 만든 아름다움은 거짓이다.
선하고 옳은 마음이 만든 아름다움만이 변하지 않을 아름다움이다.

하느님께서 당신과 닮을 꼴로 만드신 사람들인 우리.
그런 우리가 그분을 더욱 닮아가는 삶을 사느냐 마느냐는, 결국 참된 아름다움을 얻느냐 마느냐를 뜻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는 너무도 고귀하고 소중한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변모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