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욕심>

어떤 책에서 소설가 박범신 씨가 쓰신 칼럼의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박범신 씨는 작가로 이름을 날리기 전까지 가난 때문에 무척이나 고생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속이 좁은 이유를 고생을 하던 시절에 작고 어두운 방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새로 짓는 집의 모든 공간에 햇빛이 잘 들게 설계를 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설계사는 강력하게 반대했답니다. “집이란 그늘도 있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박범신 작가는 이에 굴하지 않고 무조건 밝게 집을 지어달라고 그래야 아이들이 밝고 품이 큰 사람이 자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박범신 작가가 원하는 대로 환하고 밝은 집이 완성되었지요. 그러나 작가의 마음과 달리 자녀들은 밝고 품이 큰 사람으로 자라지 않고 계속해서 속을 썩이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심리학을 전공한 친구가 이렇게 조언을 했습니다.

“집에 창이 너무 커서 환하기만 하면 아이들 심리가 산만해질 수 있어. 집이란 숨바꼭질하기에 좋을 만한 다락방도 있고, 광도 있고, 좀 어두운 데도 있어야 하니 집을 좀 바꿔 봐라.”

그제야 환한 집만 고집하던 자신의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이런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항상 좋은 것만, 밝은 것만 내 곁에 있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어둡고 힘든 것이 내 삶에 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실제로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많이 성장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밝음에 반하는 어둠도 있어야 하고, 쉬운 것에 반하는 어려움도 분명히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것만을 그리고 밝은 것만을 가지려는 욕심이 오히려 나를 더욱 더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 내 주위를 힘들게 만듭니다. 이를 오늘 맞이하는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헤로데는 자신의 가문만이 영원히 왕족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고, 자신의 가문에게 밝음이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그는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온 힘을 여기에 쏟아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 그리스도를 살해하려고 하지요. 또 혹시라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 또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 버리는 엄청난 만행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이러한 욕심이 과연 역사에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요? 또한 그 욕심을 통해 자신이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 가문이 영원히 왕으로서 군림하게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못된 왕, 판단력이 부족한 왕, 잔인한 왕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그 역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나의 욕심을 깊이 묵상해야 할 때입니다. 혹시 나의 끝없는 욕심으로 또 다른 살인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언제나 남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살기를,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내 용서를 구할 만한 일이 없기를 소망합니다(헨리 나우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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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듣기:
Episode 37: SD 가톨릭 전경아입니다 [욕심]
http://www.sdcatholic.com/node/45